태블릿 PC는 물론 스마트폰에 뭐든 기록할 수 있는 시대에 볼펜이 웬 말이냐고. 가방 속 소품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문구 덕후’가 많이 찾는 성수동 문구점 셋 소개한다.
펜도 잉크도 내 맘대로, ‘모나미 스토어’
한국 최초로 볼펜을 만든 문구 기업 모나미는 성수동과 인연이 깊다. 1963년 창업 당시 최초의 공장이 위치했던 곳이기 때문. 모나미는 2월 28일 바로 그곳에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을 선보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4번 출구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 1층 ‘모나미 스토어’가 그 주인공. 역과 건물이 전용 통로로 연결돼 있어 지하철에서 내리면 눈 깜짝할 새 매장에 다다른다.
내부 디자인 콘셉트는 ‘모나미 팩토리(Monami factory)’. 과거 모나미 성수동 공장을 연상시키는 우드 톤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여기에 미래지향적인 메탈 소재 요소를 가미해 모나미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느낌을 준다. 또한 나무 가구와 스테인리스 가구를 함께 매치해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모나미 스토어 성수점만이 지닌 특징은 단연 ‘체험’. 맞춤형 소비에 열광하는 MZ세대를 위해 모나미의 다양한 문구를 사용해볼 수 있는 공간부터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직접 부품을 조립하여 원하는 물건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 공간까지 갖췄다. 매장 한곳에 마련된 ‘잉크 랩’을 보자. 이곳에서는 고객들이 다양한 색상의 시판 잉크를 조합해 ‘나만의 DIY 만년필 잉크’를 만들 수 있다. 완성된 잉크 레시피에 이름을 붙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두면 향후 동일한 컬러를 계속 구매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볼펜·만년필 등 필기구에 맞는 10종의 종이를 조합해 소비자가 직접 자기 스타일의 노트를 제작해볼 수 있는 ‘노트 DIY 체험 공간’도 있다. 노트 표지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수 있고, 새로운 제작 기법으로 노트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꾸며진 이곳은 최근 MZ세대의 성지로 통한다. 이진희 모나미 마케팅팀 책임은 “MZ세대는 맞춤형 소비에 관심이 높다. 이에 걸맞게 체험 특화형 공간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유럽 골목의 잡화점이 떠오르는 ‘포인트 오브 뷰’
심플한 사과 모양이 그려진 다이어리, 애플저널(Apple Journal)로 이름을 알렸다. 성수동 문구 편집 숍 ‘포인트 오브 뷰(POV)’ 얘기다. 성수역을 지나쳐 다소 한산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무심하게 세워둔 ‘카페 오르에르’ 입간판이 오가는 이를 반긴다. 카페 옆 계단을 따라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비로소 POV가 보인다. 2018년 10월 오픈한 이곳은 카페 오르에르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널찍한 카페 테이블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면, 불빛이 새어나오는 한쪽 공간에 매장이 보인다.
POV에 들어서면 은은한 빛을 내뿜는 큼지막한 조명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다소 어두운 톤의 원목 진열대와 향긋한 종이 냄새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 같기도, 발걸음에 이끌려 가닿은 유럽 한적한 골목의 잡화점 같기도 하다.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모나미 스토어와 달리 이곳은 묵직하고 고요하다. 주로 혼자 방문하는 고객들은 공간과 금방 어우러져 오롯이 문구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형형색색의 문구들이 나름대로의 규칙으로 정갈하게 정리된 공간에선 편안함이 느껴진다.
POV는 ‘어떤 것에 대한 관점 또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POV에선 문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독특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문구의 면모를 즐길 수 있다. 또한 POV의 문구들엔 ‘지식 혹은 이야기를 가공하는 가장 원초적 도구’라는 가치가 담겼다. 이에 걸맞게, 빽빽하게 놓인 문구 하나하나에 섬세한 메모가 함께 적혀 있다. 그것은 문학작품에서 인용한 인상적인 문장이거나, 때로는 문구에 대한 에디터의 짧은 감상이기도 하다. 고객들은 문구와 함께 메모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POV만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탐색한다. POV 온라인 사이트를 보고 방문한 정혜은(30) 씨는 “다양한 종류의 문구를 구경하면서 문구가 가진 각각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작지만 의미있는 소비, 성수 ‘오브젝트’
뚝섬역 근처 카페거리의 끝자락. 왁자지껄한 핫 플레이스와 약간은 동떨어진 한적한 주택가 건물에 ‘오브젝트’가 있다. 매장을 알리는 간소한 입간판 하나에 의지한 채 계단을 올라가면, 햇빛이 쏟아지는 자리에 아기자기한 문구가 가득하다. 조용하지만 발랄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고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오브젝트는 소규모 창작자들과 협업해 만든 다양한 제품으로 매장을 채우고 있다. 인기 캐릭터 ‘다이노탱’을 활용한 것부터 모던한 느낌의 디자인 소품, 친환경 제품까지 특색 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이 공간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후 매장을 방문했다는 20대 여성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비롯해 다채로운 제품을 구경할 수 있어 흥미롭다”고 전했다.
오브젝트는 자신들의 제품이 현명한 소비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고객의 실천이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일환으로 선보인 ‘나만의 업사이클링’ 제품은 매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라면 봉지나 과자 봉지를 재활용해 희소성 있는 자신만의 상품을 만드는 DIY 프로젝트다. 고객들은 작은 실천을 통해 지구를 아끼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기쁨, 오로지 나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만족감 등을 공유한다. 지혜 오브젝트 마케팅팀 시니어 에디터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오브젝트가 지향하는 가치가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귀띔했다.
ADD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36 2층(성수점)
OPEN 오후 12시~오후 8시(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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